1388년 7월. 위화도 회군이 5월이었으니 창왕이 즉위하고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, 대사헌 조준이 토지제도의 개혁에 대한 필요성을 언급하는 상소문을 올렸다. “급작스레 웬 토지제도이지?”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, 고려의 귀족사회를 해체하는데 있어서 토지제도가 가장 핵심이었다. 이인임과 최영이라는 고려 보수적 귀족들의 가장 큰 기둥들이 제거되긴 했으나 그 흔적들은 토지라는 가장 민감한 문제를 통해 역력하게 남아 있었다. 예나 지금이나 부동산이 중요하겠지만, 현대의 우리들은 여러 개념의 재산이 있는 반면 농업사회였던 당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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