고려의-귀족사회-해체하기,-고려-무너뜨리기--3
     1388년 7월. 위화도 회군이 5월이었으니 창왕이 즉위하고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, 대사헌 조준이 토지제도의 개혁에 대한 필요성을 언급하는 상소문을 올렸다. “급작스레 웬 토지제도이지?”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, 고려의 귀족사회를 해체하는데 있어서 토지제도가 가장 핵심이었다. 이인임과 최영이라는 고려 보수적 귀족들의 가장 큰 기둥들이 제거되긴 했으나 그 흔적들은 토지라는 가장 민감한 문제를 통해 역력하게 남아 있었다. 예나 지금이나 부동산이 중요하겠지만, 현대의 우리들은 여러 개념의 재산이 있는 반면 농업사회였던 당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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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7년 전
고려의-귀족사회-해체하기,-고려-무너뜨리기--2
           이성계의 두 번째 귀족사회 해체작업은 위화도 회군이었다. 이인임 일파 축출은 이성계와 최영이 의도한 것이지만 위화도 회군은 외부적 원인에 의해 일어날 수 있었다. 이인임 유배 후 얼마 안 있어 1388년 몽골족을 중국에서 완전히 몰아낸 명나라가 고려에 철령 이북의 영토를 명나라 영토로 편입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. 여기서 ‘철령’이란 곳을 옛 쌍성총관부가 다스리던, 그러니까 이성계 가문이 대대로 일을 해오던 철령으로 잘못 알려진 경우가 있는데, 명나라 측에서 요구한 ‘철령’은 요동반도의 한 지명이다. 당연지사 명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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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7년 전
고려의-귀족사회-해체하기,-고려-무너뜨리기--1
       한 시대를 한 단어로 규정짓는 건 대단히 편협할 수 있는 시도이지만, 고려시대를 그래도 대표할 수 있는 단어를 뽑으라면 그것은 바로 ‘귀족’이다. 고려시대를 흔히 중세사회라고 하는 것은 고려시대는 대표적인 귀족사회였기 때문이다.            고려시대의 지배층은 크게 호족-문벌귀족-무신-권문세족 4단계로 이루어진다. 여기서 무신집권기를 제외하면 3개의 지배층은 사실상 같은 집단들이었다. 고려를 건국한 세력은 한반도 각 지방에서 힘 좀 꽤나 쓰던 호족들이었고, 호족들의 후손들이 고착화되어 문벌귀족을 이루었으며 중간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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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• 7년 전